[글로벌 포커스] 한·미동맹과 민감 국가

입력:2025-03-17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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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HK+국가전략사업단장


초강경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국제관례와 상식을 무시하는 듯한 트럼프 2기 행정부발 폭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대 무기로 내세우는 관세 제일주의는 부과의 기준이나 방식이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충동적으로 보인다. 국제정치적으로도 동맹과 우방을 가리지 않음으로써 영토 확장에 골몰한 제국주의의 향기까지 풍기고 있다.

미국의 제8대 무역흑자국으로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이 느닷없는 정치·안보적 악재를 만났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차별적 관세 정책은 차치하더라도 국내적 정국 혼란 시기에 유일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를 ‘민감 국가(Sensitive Country)’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국가안보,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경제안보 위협, 테러 지원을 이유로 산하 기구인 정보방첩국(OICI)이 관리하는 민감 국가군에 한국을 포함시켰다.

미 정부는 한국이 민감도 최하위 등급인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26번째로 포함됐음을 공식 확인했다. 에너지부 자체 판단으로 작성한 목록이므로 미 정부 차원의 판단인지 불투명하지만 동맹 관계에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에너지부는 이스라엘, 대만, 우크라이나 등도 포함돼 있어 꼭 적대적 관계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며 지속적 협력을 강조하지만 만일 시정 조치가 없다면 다음 달 15일 이후 한국은 북한과 러시아, 중국같이 미국의 적대국들과 같은 민감 국가가 된다.

따라서 파장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한국이 민감 국가가 되면 그동안 전방위적으로 협력 범위를 넓혀온 한·미동맹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다. 무엇보다 동맹인 한국이 이 리스트에 들어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한·미 양국의 신뢰는 직간접적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한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전개에 핵심축(linchpin)인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 동맹국이다. 양국 간 협력이 이미 상호방위 영역을 초월해 협력 범위가 전략적 수준까지 제고된 상황에서 이러한 조치는 미국에도 유리할 게 없다.

미국은 왜 한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한국의 핵무장론 제고에 대한 경고나 트럼프 행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의 조치를 활용해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금 협상이나 방위비 증액 협상을 고려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조치로 인해 핵과 원자력, 인공지능(AI) 같은 첨단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은 엄격히 통제된다. 에너지부가 한·미 간 과학기술 협력이 제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미 국책연구소의 민감 국가 기관과의 교류에 사전 신고와 승인 절차가 필요한 점을 보면 양자 밀착 협력이 상당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바이든 행정부 시절 조치를 그대로 시행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트럼프식 관세 정책에 부담을 느끼는 한국의 대미 신뢰에 부정적 타격이 예상된다. 또 한국 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원인이겠지만 북핵과 미사일이 고도화된 상황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의 인도·태평양 지역 순방 일정에 한국이 제외됐다는 소식도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여기에 원자력 협력을 포함한 한·미 간 과학기술 협력이 제약을 받으면 안보적으로도 북·미 대화를 기대하는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음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번 조치로 한·미동맹이 시험대에 오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 중국, 러시아를 제어하는 미국의 중요 전략 자산이며 일부 미국 전략산업의 핵심 협력국이다. 일단 민감 국가 지정 취소가 최우선이지만 여의치 않다면 내용적으로 실리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강준영 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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