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태아 성감별 금지’ 위헌, 낙태 막을 입법 서둘러야

입력:2024-02-29 04:01
공유하기
글자 크기 조정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픽사베이

임신 32주 이전까지는 의료인이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것을 금지한 현행 의료법 20조 2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28일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태아의 성별 고지 제한은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입법목적 달성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고, 부모가 태아의 성별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필요 이상으로 제약한다”고 밝혔다. 해당 조항이 즉시 무효가 되면서 임신부와 가족들은 아무때나 태아의 성별을 의료진에게 알아볼 수 있게 됐다.

헌재는 과거 남아 선호 사상이 심하던 시절에는 태아의 성을 감별해 선택적으로 출산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현재는 양성평등 의식이 자리잡으면서 성별을 가려 출산하는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또 임신 32주 이전에도 많은 의료인이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지만 실제 처벌받는 경우는 10년간 한 건도 없어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라고도 했다. 아울러 우리나라 낙태 건수 가운데 임신 10주 이전에 89.8%가 이뤄지고, 16주 기준으로 보면 97.7%에 이르기 때문에 90% 이상은 태아의 성별을 모른 채 낙태를 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태아 성감별 제한법이 사문화된 채 부모의 알권리만 제약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2021년부터 낙태죄 효력이 상실됐음에도 후속 입법이 안된 상황에서 태아 성감별 금지법까지 사라지면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를 막을 방법이 없다. 확률이 낮다고 하지만 몇 명의 태아라도 성별이 낙태의 잣대가 될 개연성은 충분하다. 의료계조차 ‘착상 전 유전검사(PGT)’를 통해 태아의 성별을 미리 감별해 선별 출산하는 생명윤리 위배 행위 등을 우려한다. 따라서 태아 성감별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 장치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태아 성별을 아무 때나 알 수 있다면 부모들의 선택적 출산 욕구를 부추길 우려도 있다. 과거 남아 선호 사상이 문제였다면 요즘은 오히려 여아를 선호하는 추세여서 남아를 임신했을 때 낙태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남아 선호 사상이 완전히 사라졌는지도 의문이다. 낙태죄 헌법불합치와 태아 성감별 금지법 위헌으로 이제 낙태를 처벌할 근거가 없어졌다. 국회는 낙태죄의 보완 입법을 서두르고, 성감별 및 고지 행위도 시기나 방법 등을 따져 태아의 생명을 지키는 법안은 존치해야 한다. 부모의 알권리가 태아의 생명보다 소중할 수는 없다. 단 한 명이라도 성별을 이유로 엄마 뱃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은 없어야 한다.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클릭! 기사는 어떠셨나요?
국민일보가 꼼꼼히 읽어보고 선정한
오늘의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국민일보 신문구독

핫이슈 페이지에서 최신 이슈와 트렌드를 따라잡으세요!
HOT Issues핫이슈 주제와 관련된 기사를 모아볼 수 있는 코너입니다
尹 파면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변의 신당 창당 제안을 거절하며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의연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7일 서울 여의도

관세전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상호관세 발표 이후 대혼란과 관련해 “중국과 유럽연합, 다른 나라들과 적자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는

조기 대선 정국

최근 여론조사에서 보수 진영 유력 차기 주자로 꼽히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선 출마 여부와 관련해 “아직 어떤 결심을 내린 게 없다. 여러 가지 고심하고 있다”고 7일 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