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의사 파업 유도’ 음모론을 또 제기했다. 정부가 현실적으로 수용 불가능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해 파업을 유도한 뒤 총선을 앞두고 극적인 타협을 이뤄 지지율을 끌어올리려 한다는 게 골자다. 지난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처음 소개했을 때도 “이 대표가 괴담 수준의 음모론을 퍼뜨린다”는 비난이 거셌는데 1주일 만에 다시 꺼내들었다. 유튜브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근거 없는 말을 원내 제1당 대표가 공식적으로 제기한 뒤 ‘의혹이 사실이라면’이라는 전제를 깔고 권력 사유화, 국정농단이라는 비난을 쏟아낸 것이다.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공의들의 사직으로 시작된 의료대란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주까지 전국의 병원 94곳에서 전공의의 78.5%인 8897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도 70%에 육박하는 7863명에 달한다. 곳곳에서 수술이 연기되고, 중증 환자들마저 의사를 찾아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전전하고 있다. 현장을 간신히 지키는 전임의마저 단체행동에 나설 조짐이고, 개원의들은 대대적인 시위에 나섰다. 정부는 보건의료 재난경보를 심각 단계로 상향하며 대책을 찾지만 역부족이다.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에 이번에도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확고하지만 피해는 전적으로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어 곤혹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대책을 찾아 머리를 맞대야 할 정치권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고만 있다. 여야 모두 관심은 온통 총선에만 쏠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정부와 의사들을 중재하기는커녕 선거에서 유불리를 따지며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다. 지지율에 혹시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불법적 집단 행동을 모른 척 하며 아예 발을 빼고 있는 것이다. 이 대표가 끊임없이 음모론을 꺼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분노가 정부여당을 향하도록 부추기면서 공천을 둘러싼 민주당 내부의 갈등에서 여론의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마저 엿보인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의료 대란이 문재인·윤석열 정부 중 누구의 책임인지, 과거에는 증원에 찬성했는데 왜 지금은 반대하는지 따지는 수준 낮은 말싸움을 벌일 시간이 없다. 여야는 힘을 합쳐 전공의 사직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의료 시스템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 현실성 있는 논의에 나서야 한다. 의대 정원 증원은 붕괴 직전의 지역·필수 의료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비책일 수 없다. 그 출발점일 뿐이다. 정원 확대로 늘어난 의사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돈벌이가 안 되고 힘만 드는’ 진료 과목이 되살아날지 이견을 조율해야 한다. 그래야 젊은 의사들이 현장으로 돌아올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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