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품업계도 ‘뷰티 모시기’에 나섰다. 1854년 창립 이후 단 한 번도 화장품을 출시하지 않았던 루이비통마저 최근 뷰티 시장에 진출했다. 경기 침체로 명품 가방과 의류 판매가 둔화하는 반면, 화장품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면서다. 불황 속 작은 사치를 뜻하는 ‘립스틱 효과(Red Lipstick Effect)’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백은 못 사더라도, 립스틱은 바를 수 있다”는 전략이 효과를 보는 것이다.
11일 명품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럭셔리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이 전개하는 루이비통이 코스메틱 부문을 신설하고 ‘라 보떼 루이비통’ 컬렉션을 신규 출시한다. 뷰티 파우치 등을 판매한 적은 있지만 화장품을 출시하는 것은 창립 171년 만에 처음이다.
대부분의 업종에서 장기불황을 호소하지만 뷰티 시장만큼은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LVMH그룹 전체의 지난해 매출은 846억8300만 유로로 전년도 보다 1.7% 감소했다. 패션·가죽제품과 시계·주얼리 카테고리는 각각 2.6%, 3.0% 줄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도 향수·코스메틱 뷰티 편집숍 세포라가 포함된 특수 리테일 부문 매출은 전년보다 각각 1.8%, 2.1% 증가했다.
백화점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보인다. 롯데백화점의 럭셔리 화장품 매출은 약 20% 증가했다. 신세계와 현대백화점 역시 각각 16.3%, 24.0% 늘어났다. 최근의 경기 침체기에 저렴한 사치품인 립스틱, 초콜릿, 작은 액세서리 등의 판매가 급증하는 것으로 립스틱 효과가 다시금 입증된 셈이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이러한 소비 패턴을 활용해 화장품 시장을 확장하는 중이다. 루이비통만이 아니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자크뮈스 역시 글로벌 화장품 기업 로레알과 파트너십을 맺고 뷰티 산업에 뛰어들었다. 프라다는 2023년 화장품 라인을 론칭한 뒤 지난해 8월 국내 시장에도 진출했다. 지난 1월에는 서울 성수동에 국내 첫 단독 매장 ‘프라다 뷰티 성수’를 오픈했다.
명품 브랜드들의 뷰티 시장 진출과 맞물려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도 럭셔리 화장품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쿠팡은 최근 럭셔리 화장품 전용 앱 ‘알럭스(R.LUX)’를 출시하며 명품 화장품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중이다. 신세계그룹 계열 이커머스인 SSG닷컴은 글로벌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 코스맥스와 손잡고 국내 중소 브랜드사 지원에 나선다.

온라인에서 명품 화장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전통적인 오프라인 명품 매장 중심의 뷰티 상품 유통 구조도 변화할 조짐을 보인다. 젊은 소비층이 명품을 재테크나 투자 개념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화장품은 단순한 뷰티 아이템을 넘어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입문템’ 역할을 하게 됐다.
화장품업계 한 관계자는 “사치재 소비가 둔화하면서, 명품 브랜드들이 물가 대비 비교적 안정적인 소비 흐름을 보이는 데다 보관도 용이하고 유행도 잘 타지 않는 뷰티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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